구동희와의 대화
2026년 4월 18일 서울 마포구
윤지원: 〈정전기와 실뜨기〉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구동희: 2008년 에르메스 개인전 ≪합성적 체험≫때 보여줬던 작업이에요. 동춘서커스 단원들하고 같이 만들었죠.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뭔가 딱 무언가 미리 결정해놓고 시작하지 않거든요. 아크로바틱한 걸 찍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어요. 이전에도 다이빙 선수들이 허공에서 수면 사이에 입수하는 찰나를 기록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느라 수영장도 찾아다니고 그랬거든요. 몸이 훈련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기술적인 걸 찍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 서커스가 떠올랐고, 일단 가서 보고 싶더라고요. 서커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충북 제천에서 하는 서커스를 관람하고 단장님을 만나서 캐스팅을 부탁해서 찍게 됐죠.
윤지원: 주연 퍼포머들이 중국 이름이더라고요.
구동희: 맞아요. 중국 기예단 출신들이에요. 제가 서커스에서 봤을 때 ‘견우와 직녀’ 테마로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에 남은 마지막 서커스단이라 듣고 가서 관람하니, 그 내용이 되게 드라마틱했어요. 공중에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고, 챕터마다 애틋하고 신파적인 역할 설정들이 들어가 있고… 보면서 응용해서 어떤 장면을 찍을지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트램폴린 위로 높이 수평으로 마주해 매달려 있으면 좋겠고. 그래서 일단 파주에 있던 세트장으로 가서 찍게 된 거예요.
윤지원: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로 장면과 그리드는요?
구동희: 아, 그것도 촬영장 가는 길에 바로 찍은 거예요. 영상 마지막에 시선이 줌아웃 되는데, 영상 속 인물 배경에 반대로 맺히는 소실점 이미지로 쓰면 좋겠다 싶어서 현장에서 바로 편집해 프로젝션 한거죠. 마지막에 줄 당기는 분도 인솔자 아니면 단역 배우였을 텐데,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하여튼 이 작업은 구체적인 기획안이 있어 그대로 맞춘 작업이라기 보단, 제가 늘 그렇듯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갔어요.
윤지원: 작품의 초반부에 크리스탈 속 남자 얼굴을 보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은 왜 넣으신 건가요?
구동희: 을지로 길을 지나다가 마음에 들어서 샀어요. 사방으로 반사되면서 아롱지는 누군지 모르는 얼굴이 좋더라고요. 맨 나중에 나오는 아저씨랑 약간 비슷하지 않나요? 전 그런 걸 생각했거든요.
윤지원: 그런가요? (웃음) 마지막에 불꽃 장면은 어떤 식으로 떠올리신 거예요? 서커스에서 가져오신 건가요?
구동희: 어릴 때 본 MGM사의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사자 생각도 났고… 서커스 보면 착시를 주는 쇼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 눈속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요새 같으면 CG로 하겠지만 전 그런 장면 밖 가려진 장치들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했고, 현장에서 직접 폭죽을 엮어 만들다 보니 딱 한 번밖에 못썼는데 합성적인 체험을 주고 싶었거든요. 저도 묘기를 부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두 가지 버전을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윤지원: 퍼포머들에게는 어떤 디렉션을 주셨나요?
구동희: 걔네들이 이미 여러 표현과 기술이 몸에 익은 단원들이니까, 저는 기술적인 동작 위주로 부탁했죠. “이 자세 좀 해달라”, “서로 만날 듯 말 듯 가보자” 같은 거요. 매체가 영상이다 보니까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운동 역학에 관심이 많던 때였어요. 여전히 관심은 있지만, 요샌 푸티지를 이어 붙여서 관계를 만드는 데 더 치중하는 편이고요.
윤지원: 그래서 오브제 작품과 퍽 잘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너지’에 관한 작품이라는 면에서요. 신작 <집적장>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구동희: 전에 다뤄본 자석 작업을 좀 비틀어 본 거에요. 일전에 트로피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는 쌓는 방식으로 해보았다면 이번엔 뒤집어서 매달린 형태로 자성의 비가시적인 응집된 인력을 중력과 결부시켜 보는 거죠. 이게 은근 무게가 나가거든요.
윤지원: 이전에 자석을 사용하셨던 작업에 대해서도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구동희: 2009년에 ‘문지문화원’의 주일우 대표님이 물리학자 최무영 교수님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과학책’ 상의 트로피를 만들어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자석들로 엉겨 붙어있는 트로피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2010년 ‘우회전략’ 전시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드럼연주자의 심장박동(2010)>라는 작품을 했었고요. 지구 자체가 커다란 자기장이잖아요. 자석이 저의 조형적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형태를 알아서 조직한다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제 작업에) 자석이 간간이 나와요. 2013년 PKM갤러리에서 했던 ≪추가적 자극(Extra Stimuli)≫개인전에도 썼는데 그 때는 생체자기 같은 이미지에 관한 거였고요.
윤지원: <정전기와 실뜨기>에서도 인물 간의 장력을 떠올리신 건가요?
구동희: 네, 그렇기도 하고 그때 또 당시에 중력 영향을 덜 받는 지구 밖에서 섹스하면 어떨까 그런 망상도 했었던 것 같아요.
윤지원: 어떨 때 조각 혹은 설치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판단을 내리시고, 어떨 때에 영상으로 만들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세요?
구동희: 보통 그런 거는 공간적 제약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각 작업을 하고는 싶은데, 보통은 헤쳐 모이는 방식 때문인지 설치나 영상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제 영상을 볼 때 약간 그런 거 있지 않아요? 뭔가 이렇게 축적시키는 그런 방식…
윤지원: 맞아요. 조각이랑 영상에서 유사한 방식의 접근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미리 상상한 아웃풋을 만들어내려는 접근이 아니라 재료들을 먼저 보고 거기에서 뭐가 나올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 같아요.
구동희: 그런 접근방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지금 유무형의 무엇이 있는가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주로 시작하려 해요. 무엇을 완벽히 계획하고 착수한다기보다는 채집하듯이 모아놓은 것을 토대로 그 안에서 이런 저런 포뮬레이션(formulation)을 해보는 거죠. 보통 영상 같은 경우는 이미지 간에 뭔가 연결이 된다 싶으면 그렇게 약간 직관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뭔가를 전달하기 위해 한다기보다는.
윤지원: 작업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아웃풋을 정해놓지 않으시잖아요. “다 됐다”라고 느끼는 어떤 감각이 있으신 거예요?
구동희: 일단은 이미지를 확보하잖아요. 그러면 그 안에서 이렇게 맞춰보고, 그때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잠재적 에너지 총량이나 주어진 물리적인 시간 같은 걸 고려했을 때 “이 정도면 됐다” 싶으면 그냥… 아니면 약속된 데드라인에 맞출 때도 있고요. (미술)작가들은 이런 식으로 직관적으로 마무리하지 않나요? 뭔가 기승전결이 명확히 있어서 결말은 이래야 되고 서사가 막 탄탄히 있어야 하고 한 게 아니다 보니까.
윤지원: 조각은 어떠세요?
구동희: 다른 것 같기는 해요. 입체 작업은 조금 더 시뮬레이션이 돼요. 저한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조각이 영상보다는 좀 더 그런 매체예요. 조각 같은 경우는 물질이고 실제 공간에 놓여야 하고, 영상은 시간의 매체고 언제라도 나중에 수정 가능하니까.
윤지원: 조각이나 설치를 하실 때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이 있나요? 예를 들어 〈딜리버리〉 같은 전시에는 구현하기 어려운 공간을 구태여 시뮬레이션하신 다음에 현실화시키셨잖아요.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항상 그때그때 떠오르시는 건가요?
구동희: 그때 제가 다루고 싶었던 건 신체와 대상과의 관계였거든요. 관객이 전시장에 오면 관습적으로 보는 미학적 대상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컨대 그 대상이 공간이자 조각인 중간 지점에 되는 걸 고민했어요. 예를 들면, 전시장 경로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간 내부로 진입하게 되거든요, 이게 위상이 조금씩 바뀌면서 부지불식 간에 움푹 파인 밑을 바라봐야 하는 좌대나 오브제가 된다거나… 그리고 배달에 딸려오는 플라스틱 칼이나 쿠폰 같은 작고 사소한 사물들의 위계는 오히려 유사작품의 위치로 격상시키고 나머지는 배경화한다거나 해서 스케일의 대비를 주는 식으로 했던 거고. 이것도 망상인데, 관객이 마치 운송 대상처럼 미술관이라는 피자 박스 속에 사람들이 갇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어요. 그걸 좀 현실적인 구조로 풀어보려 했었죠. (영상과는) 조금 메커니즘이 다른 것 같아요.
윤지원: 작가님께서 만드는 영상이랑 조각이 발상 자체는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동희: 그렇죠. 한 사람이 하는 거니까 결이 비슷할 거예요.
윤지원: 어떤 식으로 읽힐지가 되게 명백한 작업들이 있는 반면 작가님 작업은 명확하게 의미화되는 걸 거부하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 (명백히 의미화되는) 걸 재미없어 하시는 것 같아요.
구동희: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언어를 일부러 적극적으로 쓰지 않아 그럴 거예요. 어떤 메시지 전달을 목표로 하는 작업을 선호하지도 않고요. 가끔 어떤 의미를 발생시키고자 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더라도 말장난으로 우회하거나 아예 해석의 여지가 없는 직설법을 취하는 편이에요. 대개는 그냥 하는 거지. 뭐 대단한 의미 전달의 소명의식을 갖고 관객에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진 않아요.
윤지원: 그렇다면 작가님은 작업할 때 어떤 게 중요한가요?
구동희: 그냥 있는 대로 바라보고, 제가 무언가 관심이 지속되고 창작을 통해 감각이나 생각을 이끄는 과정이요.
윤지원: 작가님이 봤을 때 지난 작업들 중에서 더 마음에 드는 작업이 있고 사실 그렇지 않은 작업이 있을 거잖아요.
구동희: 있기도 한데, 전반적으로는 다 마음에 안 들어요. (웃음)
윤지원: (웃음) 늘 그러세요?
구동희: 저는 늘 그래요. 그러니 다음 창작을 모색하겠죠. 영상이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하고 나면 실체가 없는 이미지라 그런지 영상 매체에서 그런 느낌을 좀 더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매체 환경도 일정 영향을 끼치는 것 같고 왜 그런지는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고요…하여튼 그래요. 저는 그리고 영상 같은 경우에 촬영 대상이나 이미지의 발견과 현장의 기록이 더 중요해요.
윤지원: 일종의 ‘재미’가 되게 중요하다고 느끼거든요. 근데 그 재미의 정체가 무얼까라는 궁금증이 있어요.
구동희: 저는 어떤 상황에서 창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요소들을 찾는 게 재미있어요.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 모순이나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거나 이미지와 실체가 어긋날 때와 같이요.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상황들 또한 마찬가지로요.
윤지원: 작가님의 작업에서 특정한 방법론이 발견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때그때 이제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시지만 공통되게 좀 어떤 엉뚱한 상상, 망상 같은 걸 떠올리시고 그게 이제 작업의 발단이 돼서 낯선 형태 혹은 좀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런 데에 집중하시는 것 같아요.
구동희: 근데 그런 거를 미리 계산하거나 고려해서 작업하지는 않아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윤지원: 그렇군요. 언제부터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셨던 거예요?
구동희: 어릴 때부터 그렇게 했던 거 아닐까요? 왜냐하면 기술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배우면 알게 되는 거지만, 저에게 작업 프로세스는 그냥 이게 그간 쌓인 감각이나 지식이 결합된 유기적 경험칙 같은 것이 적용되는 거거든요. 이 선택의 과정을 저 스스로는 잘 아는데 막상 말로 설명하면 되게 이상하고요.
윤지원: 일관되게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거듭해서 낯선 것들을 만들어내시는데, 그 과정에서 손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생각, 발상의 일관된 이상함 같은 게 퍽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작업의 발단이 되는 일종의 망상이 있는데…
구동희: 저는 관찰에서 출발하는 것이 많아요. 제가 의외로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서요.
윤지원: 저는 그 연결의 감각이 되게 독특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동희: 그래요? a랑 무언가 연결할 때 a에서 a-로 안 가고 f랑 연결하고… (웃음)
윤지원: 생각의 패턴에서 일종의 일관성이 느껴지는데 그게 학습된 패턴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이상한 재미를 캐치하기 어려워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또 하나 궁금한 건, 그런 망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를 하시나요?
구동희: 아니요. 저는 그냥 결과물만 갖다 놓지 제가 작품 옆에 붙어서 해설할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거는 그렇게 제작 과정에… 그러니까 제가 작품을 하게 되는 동인이거나 참고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작업 프로세스 전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받는 거지 제가 이 작업을 통해서 그걸 보여주고 하고자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요새 드는 생각은 프로세스를 좀 단순화하자 그런 생각을 좀 해요.
윤지원: 조금 더 의미가 전달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가져보신 적이 전혀 없으세요? 예를 들어서 아까 얘기했었던 것처럼…
구동희: 조금 더 계몽적인 거 말인가요?
윤지원: 계몽적이거나 혹은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한다거나 조금 더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거나… 작업을 하는 동기가 궁금해요.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든지 어떤 감정이 든다든지…
구동희: 아니면 사회를 향한 분노? 예술혼 그런 거?
윤지원: 네, 이를테면요.
구동희: 오히려 정치적 발언을 담은 작업을 하라고 하면 그게 더 쉬울 것 같아요. 더군다나 저는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그런 건 성격상 어려워요. 조형적인 면이든 지적인 면이든 간에 전 창작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을 발견하는 게 큰 것 같아요.
윤지원: 여전히 즐거우세요 작업하시는 게?
구동희: 아니요. (웃음) 저는 요새 젊을 때만큼 순수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하면 할수록 (작업을) 더 잘 모르겠어요.